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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팁/생활정보

고사성어 모음7

by 낭만ii고양이 2018. 6. 1.









005 ◈간장막야(干將莫耶)◈ 


〈명검도 사람의 손이 가야 빛나듯, 사람도 교육해서 선도해야 한다〉 


"환공(桓公)의 총(蔥), 태공(太公)의 궐(闕), 문왕(文王)의 녹(錄), 장군(莊君)의 홀(忽), 합려(闔閭)의 간장(干將)과 막야(莫耶)와 거궐(鉅闕)과 벽려(璧閭), 이것이 다 옛날의 좋은 칼이다. 그러나 숫돌에 갈지 않으면, 곧 날카롭지 아니하니, 사람의 힘을 얻지 못하면 곧 자르지 못한다" 


1955년 중국에서 월왕(越王) 구천(勾踐)의 동검(銅劒)이 출토되었다. 검신(劒身)에 온통 마름모꼴의 무늬가 새겨져 있고, '월왕구천자작자용검(越王勾踐自作自用劒)이라는 아홉 글자가 새 모양의 전서(篆書)로 새겨져 있으며, 칼날 양면에는 남색 유리와 녹송석(綠松石, 터어키돌)이 박혀 있다. 

기록에 의하면 오나라의 명 대장장이인 간장은 왕의 명령을 받고 명검 두 

자루를 주조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선 정선한 청동을 모아 녹이려 하는데, 3년이 지나도록 녹일 수 

가 없었다. 온갖 노력 끝에 그의 아내인 막야(莫耶)가 머리카락과 손톱을 잘라 노(爐)에 던져 넣고, 여자 아이 300명이 풍구를 불어서 겨우 녹임으로써 주조 

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 명검의 이름은 대장장이 부부의 이름을 본 따 각각 간장과 막야로 지 

어졌다. 

위의 글은 순자(旬子)의 '성악편'에 실려 있는 글로서, 순자는 '사람의 성품은 악한 것이니, 그것이 선하다는 것은 거짓'이라며, 성악설을 주장했는데, 이것은 청동이 그 자체로는 명검이 될 수 없고, 반드시 인위적인 과정을 거쳐야 

명검이 될 수 있듯이, 사람의 성품은 본래 상태로서 악한 것이니 예(禮)로써 교육시켜야만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006 ◈강노지말(强弩之末)◈ 


〈강한 군사도 원정을 가면 군력이 쇠퇴하기 마련이다〉 


"힘찬 활에서 퉁겨 나간 화살도 마지막에는 비단조차 뚫기 어렵다" 


「사기(史記)」의 '한장유열전(韓長孺列傳)'에 의하면, 한의 고조는 자기 

보다 몇 배의 군사력을 지닌 항우를 패배시킨 후 흉노의 정벌을 위해 출전 

했다가 포위되고 말았다. 이 때 진평이 묘안을 내어 포위망을 간신히 벗어 

났는데, 이후로 한 고조는 흉노족과 화친을 맺고 매년 선물(供物)을 보냈으 

나, 흉노족들은 약속을 어기고 무례한 행동을 많이 했다. 

한 무제(漢武帝) 때 흉노족을 무력으로 응징키로 결정하고 대신들과 이 

문제를 논의하게 되었는데, 어사 대부 한안국은 흉노를 공격하기 위한 원 

정 계획에 반대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힘찬 활에서 퉁겨 나간 화살도 나중에는 비단조차 뚫기 어렵습니다." 

「화식전(貨殖傳)」에 보면, '백리 먼 곳에 나무를 팔러 가지 않고, 천리 

먼 곳에 쌀을 팔러 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원리를 가장 잘 이용하여 출세한 사람이 바로 진나라 재상을 지냈던 

범수로, 진나라 소왕에게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전법을 건의하여 진나라가 

육국을 병합하는 길을 열게 했던 것이다. 






◈개과천선(改過遷善)◈ 

007 

(지난 잘못을 뉘우치고 새롭게 착한 사람이 되다) 


"지난 허물을 과감히 고치어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 주처는 굳게 결심했 

다." 


진(晋)나라 혜제 때 양흠 지방에 주처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태주 벼슬을 

한 아버지가 그의 나이 열 살 때 돌아가시자 방탕하고 포악한 사람이 되어 

마을 사람들로부터 남산의 호랑, 장교에 사는 교룡(蛟龍)과 더불어 삼해(三害) 

라는 평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새사람이 되겠다는 각오로, 목숨을 건 사투 끝에 호랑이와 교 

룡을 죽이고 마을로 돌아왔으나 아무도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실 

망한 그는 마을을 떠나 등오에 가서 대학자 육기와 육운을 만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육기는, 

"굳은 의지를 지니고 지난 날의 과오를 고쳐서 새사람이 된다면(改過遷善) 

자네의 앞날은 무한하네." 

라고 격려를 해주었고, 주처는 이에 용기를 얻어 이후 10여 년 동안 학문과 

덕을 익혀 마침내 대학자가 되었다는 데서 개과천선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공자는 '허물을 고치지 않는 것이 더 큰 허물이며, 허물을 알았으면 고치 

기를 꺼리지 말라고 했다. 

◈개관사정(蓋棺事定)◈ 

008 

(사람은 죽어 관뚜껑을 덮고 난 뒤에야 정당한 평가를 할 수 있다) 


"장부는 관을 덮어야 일이 비로소 결정된다 

그대는 아직 다행히 늙지 않았거늘 

어찌 원망하리 초췌히 산속에 있는 것을 

심상궁곡은 살 곳이 못된다. 

벼락과 도깨비와 미친 바람까지 겸했다." 


'관뚜껑을 덮기 전에는 모른다'는 말은 인간의 삶이 변화무쌍하고 영고성 

쇠가 다양하기 때문에 관뚜껑을 닫고 난 뒤에야 정당한 평가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후의 평가라는 것도 역사적인 인물, 역사적 사건에서나 논의 되는 것이 

지 초로인생은 여기에도 해당되지 않고 그저 사라질 뿐이다. 

이 시는 두보가 사천성 동쪽 기주의 깊은 산골로 들어와 살고 있을 때, 역 

시 거기에 와서 살며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고 있던 친구의 아들인 소혜란 

사람에게 편지 대신 보내준 시(詩)이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길가에 버려져 있는 못을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앞서 부러져 넘어진 오동나무를 

백년 뒤 죽은 나무가 거문고로 쓰이게 되고 

한섬 오래된 물은 교룡을 숨지기도 한다. 


이어서 윗 시로 이어진다. 

오늘의 충신이 내일의 역적 소리를 듣고, 어제까지 천덕꾸러기 노릇을 하 

며 이 집 저 집 얻어먹으며 다니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벼락부자가 되고, 벼 

락감투를 쓰게 된 예는 얼마든지 있다. 

이처럼 부귀와 성쇠라는 것이 원래 항상 변하기 마련이지만, 세상이 다 변 

해도 그 사람만은 틀림이 없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이 시간과 환경에 따 

라 전혀 딴판으로 변하는 수도 적지 않다. 

때문에 인간의 종합적 평가는 관뚜껑을 닫은 후에야 비로소 내릴 수 있는 

것이다. 




◈거안제미(擧案齊眉)◈ 

009 

(아내가 남편을 지극히 공경하다) 


"매일 돌아오면 아내가 밥상을 차리고 기다렸다가 양홍의 앞으로 나오는 

데 눈을 아래로 깔고 밥상을 눈썹 높이로 들어 바쳤다." 


「후한서」의 '일민전(逸民傳)'에 보면 집은 가난하지만 절개가 곧은 양홍 

(梁鴻)이란 학자가 있었다고 한다. 뜻이 있어 장가를 늦추고 있는데, 같은 현 

에 몸이 뚱뚱하고 얼굴이 못생긴 맹광(孟光)이라는 처녀가 서른이 넘은 처지 

에서, '양홍 같은 훌륭한 분이 아니면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한다는 소문을 

들은 양홍은 이 처녀에게 청혼을 하여 결혼을 했다. 

결혼 후 며칠이 지나도록 색시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자 색시가 궁금하 

여 그 이유를 물었다. 

이에 양홍이 대답하기를, 

"내가 원했던 부인인 비단옷 입고 진한 화장을 한 여자가 아니라, 누더기 

옷을 입고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라도 살 수 있는 그런 여자였소." 

라고 하자 색시는, 

"이제 당신의 마음을 알았으니 당신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 후로 아내가 화장도 하지 않고 산골 아낙네처럼 수수한 차림으로 생활 

을 하자, 양홍은 그녀와 둘이 산 속으로 들어가 농사를 짓고 베를 짜면서 생 

활했다. 

양홍은 농사짓는 틈틈이 시를 지어 친구들에게 보냈는데, 그 가운데 왕실 

을 비방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마침내 그것이 발각되어 나라에서 잡으려 

하자 양홍은 오(吳)나라로 건너가 고백통(皐白通)이라는 명문가의 방앗간지기 

가 되어 지냈다. 

양홍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 아내는 늘 밥상을 차리고 기다렸다가 눈 

을 아래로 깔고 밥상을 눈썹 위까지 들어올려(擧案齊眉) 남편에게 공손하게 

바쳤다고 한다. 

이를 본 고백통은 그 내외를 예사롭지 않게 여기고 여러 면에서 도와주었 

고, 덕분에 양홍은 수십 편의 책을 저술할 수가 있었다. 

양홍의 훌륭한 저술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에서 이룩된 업적인 것이다. 

◈거이기양이체(居移氣養移體)◈ 

010 

(처한 위치에 따라 기상이 달라지고 먹고 입는 것에 의해 몸이 달라진다) 


"거처는 기상을 변하게 하고 먹고 입는 것은 몸을 달라지게 한다. 사람에 

게는 거처라는 것이 참으로 관계가 크다. 다같이 사람의 자식이 아니냐." 


윗 글은 맹자가 제(薺)나라 수도에 가서 제나라 왕자를 보고 탄식하며 한 

말이다. 맹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왕자가 살고 있는 집이나 그가 타고 다니는 수레며 말이 대체로 귀한 집 

자식들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도 왕자가 달라 보이는 것은 그가 처해 있 

는 위치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니 하물며 천하의 넓은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은 어떠하겠느냐?" 

위에서 말한 천하의 넓은 곳이란 도를 터득해서 천지와 호흡을 같이하는 

성자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맹자는 예를 들어 설명한다. 

"노나라 임금이 송(宋)나라로 갔을 때 한 성문에서 크게 외쳐 불렀다. 그 

러자 문지기가 '우리 임금님은 아닌데 어떻게 목소리가 우리 임금님과 같으 

냐'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두 임금이 처해 있는 

위치가 서로 같기 때문이다. 

◈거자불추래자불거(去者不追來者不据)◈ 

011 

(가는 사람 붙들지 않고 오는 사람 물리치지 않는다) 


"가는 사람을 붙들지도 않고, 오는 사람을 물리치지도 않으며 진실로 배우 

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이르면 곧 받을 뿐이옵니다." 


「맹자(孟子)」의 '진심하편'에 나오는 말로 그가 등(藤)나라에 있을 때였 

다. 

맹자가 가는 곳마다 가르침을 받고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어느 날 맹자가 거하는 여관의 일꾼이 미투리를 삼다가 창틀 위에 올려놓 

았었는데, 맹자를 찾아온 일행들이 다 돌아간 다음 다시 신을 삼고 창가로 가 

보았으나 삼다 둔 미투리는 보이지 않았다. 일꾼은 누군가가 그것을 훔쳐갔 

다고 생각하고 큰 소리로, 

"맹자 같은 분을 찾아온 사람 가운데도 도둑놈이 있습니다. 

라며 맹자에게 항의를 했다. 

이 말을 듣고 맹자는, 

"나를 만나러 온 사람이 그 신을 훔치기라도 했단 말이오?" 

하고 묻자 대답하기를,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사람을 대하는 방법은…." 

하고 윗글과 같이 말했다 

「순자(荀子)」의 '법행편(法行篇)'에는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의 말이라 

하여, 

"군자는 몸을 바르게 하여 기다릴 뿐이다.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절하 

지 않고,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붙들지 않는다." 

라고 나와있다. 


「논어(論語)」에 보면 공자가 호향(互鄕)이라는 풍기가 문란한 곳의 한 소 

년을 만났다고 해서 제자들이 스승이 왜 그런 곳의 사람을 만나는가 하고 의 

아해할 때, 

"사람이 자신을 깨끗이 하고 찾아오면 그 깨끗함을 받아들일 뿐 그 과거 

를 따질 것까지야 없지 않느냐." 

고 했다. 

이는 천하를 제도하려는 성인의 입장에서 지역 차별이나 인간차별을 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건곤일척(乾坤一擲)◈ 

012 

(황제의 자리를 놓고 승부를 겨룬다) 


"용은 지치고 범은 곤하여 천원(川原)을 나누니 

억만 백성은 생명을 보존하였다. 

누가 군왕으로 하여금 말머리를 돌리도록 권하여 

참으로 하늘과 땅을 건 도박을 벌였던가." 


위의 시는 한나라와 초나라 싸움의 한 토막을 읊은 것이다. 

한(漢)나라의 유방과 초(楚)나라의 항우는 진(秦)나라를 무너 뜨렸으나, 이 

제는 서로가 천하를 독차지하려고 서로 피나는 싸움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싸움은 일진일퇴,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자 결국 두 사람은 천하를 둘로 나누 

기로 약속하고 유방은 홍구의 서쪽을, 항우는 동쪽을 차지하기로 했다. 항우 

는 강화조약이 성립되자 군대를 이끌고 철수를 했으며 유방도 조약대로 군대 

를 철수하려는데 장량(張良)과 진평(陳平)등이 간언했다. 

"지금 초나라는 군대가 지쳐 있으며 식량도 떨어졌습니다. 이 기회야말로 

초나라를 물리칠 수 있는 하늘이 주신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 말을 듣고 유방은 항우와의 약속을 어기고 말머리를 돌려 철수하는 항 

우를 공격해 그를 대패시키고 한왕조(漢王朝)를 세우게 되었다. 

시인(詩人) 한유는 장량과 진평이 유방을 도와 패업을 이룩한 사건이야말 

로 천지(乾坤)를 건 모험으로 생각하고 홍구를 지날 때 이 감회를 '과홍구(過 

鴻溝)'라는 칠언절구(七言絶句)시로 회상했는데, 그 시가 바로 위의 내용이다. 

건곤(乾坤)이란 천지(天地)를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건곤일척'이란 큰 

표적(天下)를 두고 얻느냐 잃느냐에 모험을 건 승부를 이야기할 때 비유된다. 

◈걸해골(乞骸骨)◈ 

014 

(자신의 몸이나 해치지 말고 돌아가게 해달라) 


"천하의 일은 대체로 정하여 졌나이다. 뒷일은 군왕(群王)이 스스로 행하시 

오. 원컨대 나는 하골을 빌어 졸오(卒伍)로 돌아가려 하오." 


한(漢)과 초(楚)의 싸움에서 초반전은 항우측이 대단히 우세했다. 때문에 

만약 한나라가 교묘한 지략과 협상을 않았다면 결과는 한나라의 패배였을지 

도 모른다. 다만, 한의 유방은 장량, 진평(陳平)에게 말하고, 그 방책을 물었 

다. 그러자 진평은 이렇게 대답했다. 

"항우의 강직한 신하는 아보〔亞父, 항우가 범증(范增)을 존경하여 아버지 

의 다음가는 사람이란 뜻으로 아보라고 불렀다〕와 종리매(鍾離昧)등 몇 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왕께서 만일 대금을 흐트려 군왕의 사이를 이간시킨다면, 

항우는 원래 의심이 많은데다가 참소하는 말을 잘 믿는 성격이므로, 초나라는 

내부로부터 붕괴될 것입니다." 

한왕은, 황금 4만금을 주어 진평으로 하여금 계획을 실행하게 했다. 진평 

은 황금을 뿌려, 많은 첩자들을 초나라 군대 속으로 보내며 다음과 같이 말하 

게 했다. 

"종리매(鍾離昧) 등의 장군은 공적이 큰데도, 왕에게 봉(封)함을 받지 못하 

여, 항우를 미워하며 한나라에 내통하려 하고 있다." 

이 말을 들은 항우는 과연 종이매 등을 신임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아 

직 범증에 대한 신뢰는 어떤 사정이 있어도 한왕에게 사자를 보냈다. 한왕은 

진평의 지혜로, 최고급 요리를 갖추어 사자를 맞이했는데 사자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나는 아보(亞父)의 사자인 줄로만 알고 있었더니 항우가 보낸 사자였나?" 

하고 말하며 그 요이를 물리치고 거친 요리로 바꾸게 했다. 

사자가돌아가서 이 사실을 자세히 항우에게 보고했고, 항우는 범증을 의심 

해 그 권한을 축소케 했다. 

범증은 항우의 마음속을 알고 크게 노하여 위와 같이 말하고는 항우의 곁 

을 떠나 팽성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그 노함이 마음의 병으로 번져 도중에 등 

창이 나서 죽었고, 그 후 얼마 안되어 항우도 망했다. 

유방과 항우의 승패를 가른 싸움은 인간관리의 싸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유방이 모사와 용장들을 잘 통솔한 반면, 항우는 단 하나의 모사인 범증마저 

도 적의 간계로 의심을 했으니 어찌 항우가 지고 유방이 이기지 않겠는가? 

◈격물치지(格物致知)◈ 

015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지식을 확실하게 하고 넓힌다) 


"사물에 이르러 앎을 이루고, 뜻을 성실히 하여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고 집안을 정돈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한다." 


「대학」의 팔조목(八條目)이다. 

주자는 서양철학의 인식론격인 격물치지에 대해 설명하기를, 

"세상 만물은 모두 이치를 지니고 있다. 이 이치를 하나씩 추구해 들어가 

면 마침내 세상만물의 표리와 정표, 조잡한 것들을 다 밝혀낼 수 있다. 격물 

의 격(格)은 도달한다는 것으로 격물은 사물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치지란 만 

물이 지닌 이치를 추구하는 궁리와 같은 뜻으로 세상사물에 이르고 이치의 

추궁으로부터 지식을 쌓아 올려서 지(知)를 치(致)한다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덕으로 천하를 다스리려면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려야 하고, 나라를 다스리 

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집안을 다스려야 하고, 그 집안을 다스시려고 하는 

자는 먼저 그 몸을 닦아야 하고, 몸을 닦으려고 하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 

르게 해야 하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뜻을 정성스럽 

게 하고,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자 하면 먼저 아는 것을 극진히 해야 할 것 

이다. 

아는 것을 극진히 하는 것은 사물을 연구하는 데 있다. 이것이 바로 주자 

의 견해이다. 

주자의 견해와는 달리 육상산(陸像山)은, '격'을 물리치다, '물'을 물욕(物慾) 

의 외물(外物)로 주장한다. 그는 사람이 참다운 지혜(良知)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을 물리쳐야 한다고 말한다. 

명(明)의 왕양명(王陽明)은 '격'을 바르게 한다, '물'은 외부 세계의 사물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향하고 있는 대상(對象)을 가리키게 되고, '지'는 지식 

이 아니라 사람이 날 때부터 지니는 마음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즉 맹자가 

말한 양지(良知)를 가리키게 된다. 

주자의 격물치지가 지식 위주인 것에 반해 양명은 도덕적 실천을 중하게 

여기고 있다. 주자학을 이학(理學)이라고 부르고 양명학을 심학(心學)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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